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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건너에서 온 린이 제비 통을 안고 있어요. 흔들어서 나온 막대의 번호로 종이 한 장을 받아 가세요.
오늘
통을 흔들면 구멍으로 막대가 하나 나와요.
묶어 둔 제비는 다시 펴지 않아요. 걸어 두고 가시면 오늘 몫은 여기서 끝이에요.
오미쿠지(おみくじ)는 일본의 신사와 절에서 뽑는 제비예요. 나무 통을 거꾸로 세워 흔들면 위쪽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막대가 하나 삐져나오고, 그 막대에 적힌 번호의 서랍에서 종이 한 장을 받아요. 종이 맨 위에는 운세 등급이 큼직하게 찍혀 있고, 그 아래로 짧은 시 한 수와 항목별 풀이가 줄줄이 이어져요.
우리말로 옮기면 제비뽑기에 가깝지만, 절에서 흔들어 뽑는 산가지나 서양의 포춘쿠키와 하는 일이 같아요. 하루를 통째로 설명해 주는 대신 손에 한 장을 쥐여 주는 거예요. 풀이가 길지 않고 짧은 줄로 늘어서 있어서, 읽는 사람이 자기 사정 쪽으로 끌어와 대 보게 돼요.
등급은 일곱이에요. 좋은 쪽에서부터 대길·길·중길·소길·말길·흉·대흉 순서예요. 신사마다 사이에 반길(半吉)이나 말소길(末小吉) 같은 자리를 더 두기도 하는데, 이 일곱을 쓰는 곳이 가장 많아요.
대길이 나왔다고 하루가 저절로 굴러가는 것도, 흉이 나왔다고 하루가 정해지는 것도 아니에요. 일곱 자리는 오늘을 어느 쪽으로 기울여 읽어 볼지를 정해 주는 눈금이에요.
등급 아래에는 항목이 늘어서요. 하나하나가 짧은 한 줄이라 지시가 아니라 기울기예요 — "늦게 이루어진다", "서쪽에서 찾으라" 처럼요. 오미쿠지의 말투가 예스럽고 짧은 건 모자라서가 아니라, 짧아야 읽는 사람이 자기 자리에 대 볼 여지가 남기 때문이에요.
일본에서는 흉이 나오면 그 종이를 신사 경내의 줄이나 소나무 가지에 묶어 두고 나와요. 묶는다는 뜻으로 무스부(結ぶ)라고 해요. 경내 한쪽에 종이가 하얗게 매달린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사진을 보신 적이 있을 거예요. 그게 다 두고 간 제비예요.
까닭으로는 두 가지가 같이 전해져요. 하나는 안 좋은 것을 신사에 두고 나온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잘 안 쓰는 손으로 매듭을 지으면서 그만큼 마음을 들이면 그 어려움이 풀린다는 것이에요. 어느 쪽이든 종이를 손에 들고 나가지 않는다는 점은 같아요.
좋은 제비는 반대예요. 곱게 접어서 지갑이나 주머니에 넣고 가져가요. 그래서 오미쿠지는 받는 데서 끝나지 않아요. 두고 갈지 가져갈지를 정하는 데까지가 한 벌이에요.
린도 그렇게 해요. 좋은 게 나오면 같이 웃고, 안 좋은 게 나오면 마당 줄을 앞발로 가리켜요. 그래서 이 자리에서도 흉과 대흉에는 묶어 두고 가는 단추가 하나 나와요. 벌을 주는 자리가 아니라 내려놓고 가는 자리예요.
통은 육각이나 팔각으로 깎은 나무 통이에요. 위쪽에 막대 하나가 겨우 빠져나올 만한 구멍이 뚫려 있어서, 통을 거꾸로 세워 흔들면 그 구멍으로 막대가 하나 나와요. 막대에는 번호가 적혀 있고, 그 번호를 들고 가면 같은 번호가 붙은 서랍에서 종이를 꺼내 줘요.
번호와 서랍은 통마다 정해져 있어요. 백 개짜리 통이면 서랍도 백 칸이고, 제일 번(第一番)은 언제나 같은 칸이에요. 그래서 오미쿠지는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는 자리가 아니라 흔들어서 나온 것을 받는 자리예요. 종이를 펴기 전까지는 무엇이 나올지 아무도 몰라요.
제비는 하루에 하나예요. 다시 흔드는 단추는 두지 않았어요. 마음에 드는 게 나올 때까지 다시 뽑을 수 있으면 그건 제비가 아니라 고르기가 되니까요. 오늘 몫은 오늘 한 장이고, 내일은 린이 통을 새로 흔들어요.
묶어 두고 간 종이도 그날 안에는 다시 펴지지 않아요. 두고 가는 것까지가 한 벌인데 돌아서서 다시 집어 오면 두고 간 것이 아니게 되거든요.
신사지기
린
바다 건너에서 온 고양이예요. 기모노 소매를 걷고 제비 통을 흔들어요. 통 안에서 막대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면 콩이가 제일 먼저 달려와요. 좋은 게 나오면 같이 웃고, 안 좋은 게 나오면 마당 줄에 묶어 두고 가라고 앞발로 가리켜요. 두고 가는 것까지가 한 벌이라는 게 린의 말이에요.